공포마케팅
<공포 마케팅>
그러면서 목회자를 신성화하는 것들, 출애굽의 모세에게 대항했던 미라암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종에 대한 조건 없는 복종과 뒤에서라도 목사님에 대해서 욕하면 하나님께서 다 알게 하시고 벌을 받는다는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이하 생략)
- <아파트 교회>에 첨부된 성도 간증문 중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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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나라 한국은 좋은 곳이다. 북쪽 휴전선 가까이에 있는 이곳에도 경의중앙선이 연결되어 있어, 월롱역에서 홍대입구까지 전철 시간으로만 약 1시간이 안 된다. 교통이 너무 좋다. 도로망 또한 역대급이다. 서울-문산 고속도로가 언제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쏘카로 서울을 오갈 때마다 이 도로는 꼭 나를 위해 깔아놓은 시온의 대로 같게만 느껴진다. 쏘카는 또 어떤가? 렌트카가 이렇게 편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 좋은 내 나라다. 국뽕 솟는다.
2.
다만 두 가지가 걸리는데, 하나는 길거리 흡연이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마스크 안으로 들어와 숨통을 막을 때면 화가 난다. 흡연자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여하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맡는 담배냄새가 유쾌할 수는 없다. 또 하나는 캔디 전화기를 외롭지 않게 하는 텔레마케팅이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이 좋은 말이 징글징글하도록 전화가 울린다. 처음에는 간만에 낯설기도 하고, 마케터 분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어 정중히 거절했는데, 정중하니 통화가 길어진다. 빠르게 "죄송합니다" 하고 끊어야 한다. 나름 서로에게 윈윈일 것이다. 사랑합니다 마케터님들. 힘내세요.
3.
가장 자주 걸려오는 전화는 보험이다. 고객님 마흔 다섯이나 되셨는데, 암보험 하나 없으신 거예요? 듣다보면 내가 뭔가 대단히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특약이니 하면서 췌장을 들먹거리기라도 하면 종종 배가 싸 했던 기억까지 되살아난다. 공포마케팅. 이걸 제일 잘 하는 곳이 교회다.
4.
책 자체는 길게 읽을 분량도 아니고 철학적 내용도 아니어서 수월하게 읽고 끝냈는데, 책 말미에 붙은 몇 분의 간증문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그냥 지나치려다 며칠이나 지난 후에 마음을 정리하고 끄적인다. 분명히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나에게 이러 부분이 들러붙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5.
간증문 몇 편에서 각 교회 내부의 비슷한 문제가 보인다. 유형은 비슷하다. 권위자, 즉 목사님이 성도에게 성경말씀을 들먹이며 저주를 말하는 식이다. 위협을 가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목사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나 헌금(돈)에 관한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십일조인데, 성경의 구조와 논리상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이 되었다. 하여 십일조의 올바른 재정의가 필요한대도 교회는 십일조 하면 복 받고, 십일조 안 하면 다 뺏긴다는 식의 공포마케팅을 펼친다. 이럴 때 말라기는 본연의 뜻을 잃고 초라해진다. 여하간 십일조의 재정의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기회를 보도록 하고, 문제는 이런 식의 공포마케팅이다. 매우 빈번하다.
6.
심각한 것은 이런 공포마케팅을 펼치는 목사 스스로에게도 진짜 믿음이 되어 있는 경우다. 리플리 증후군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이것은 사실 무지, 무식의 결과다. 성경공부를 바르게 안 했다는 말이다. 성경에 대해서 소위 "영적"이라는 식으로 제멋대로 이해하고 말한다. 제멋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다층적인데, 그런 식의 설교를 듣고, 그런 식의 말을 어디선가 주워담는다. 들은 이가 말하고 말한 것을 다시 듣는 식으로 자기 강화를 한다. 대부분이 자기 강화,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되풀이하는 구조로 성도에게 퍼져나가고, 율법주의 같은 정죄가 숨통을 조인다. 대다수 교회의 현실일 것이니, 교회를 안 가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7.
성경 말씀이 성도(목사를 포함한 모두)에게 적용되는 방식은 "자기 부정"이다. 죄의 현실을 바르게 깨닫게 하고, 이런 죄인을 구원하신 십자가 사랑에 나의 욕망도, 나의 소원도, 나의 권리도 내어드려, 이것이 나의 사랑이라 고백하게 하시는 방식이다. 하여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인 성도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의 태도로 십자가를 실현한다. 내 것을 내어주고, 내 결정을 양보하며, 내 권리를 제한한다. 이럴 때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 했던 바울의 고백이 지금 나의 고백으로 현실화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된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기에 주님은 "나를 따르려는 자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라 말씀 하셨다.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말씀은 의심해야 한다. 내가 올바르게 말씀을 따르는지 따져봐야 한다.
8.
말씀이 자기 강화로 적용되는 경우들이 있다. 목사가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말씀을 이용할 때, 가정에서 또한 관계에서 말씀에 깨어지는 식이 아니라, 나를 옹호하는 식으로 말씀을 활용하려 할 때, 그때는 멈춰야 한다. 말씀은 그런 식으로, 즉 공포마케팅 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옹호하는 식으로 말씀을 대하는 것은 내가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다. 말씀이 나를 두둔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말씀에 권세는 없다. 내 자존심만 있을 뿐이다. 이런 일을 제일 잘 하던 이들을 성경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이었다. 예수는 평생 바리새인과 싸우셨다.
9.
공포마케팅은 효과가 좋다. 기억해야 한다. 효과가 좋은만큼 죄다. 예배 안 해서, 기도 안 해서 저렇게 되었다고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헌금 안 해서 복을 못 받는다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런 말들의 이면에는, 나는 열심히 해서 복받을 거라는 헛된 망상이 있다는 것 즈음은 알고 있다면 좋겠다. 저 세리와 달라 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던 바리새인을 향해 주님이 어떤 말을 하셨는지 알고나 있으면 좋겠다.
10.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신학교 채플 중앙에 금색 헬라어 활자로 새겨진 요한복음의 말씀이다. 교회는 자유케 하는가, 아니면 교회를 위해 옭아매는가? 성숙과 변화가 있는가, 아니면 프로그램으로 뺑뺑이 돌리는가? 고백과 나눔이 있는가, 왁자지껄 식당이나 찾아다니며 회비를 걷으면서 또 짓누르는 건 아닌가? 오늘도 마케팅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고민한다. 교회가 무엇인지. 내가 뭘 하는지.
#reStartCHURCH #우리다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