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낭중지추

우리다시 2022. 12. 13. 22:08

<낭중지추>

꼭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 최고인 것처럼 등장하기만 해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
- [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 잭 내셔


---

1.
한 때는 가장 위로가 됐으나 지금은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 사자성어 중에 '낭중지추'가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이 말은 뛰어난 사람은 어디서나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다는 이 말뜻이 나는 참 좋았다. 순수하게는 신앙적으로,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시고 보고 계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사회적으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처럼, 누군가는 나를 알아봐 줄 것이란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나 스스로가 떳떳하게 실력을 쌓다보면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참 열심히도 살았다.

2.
그러나 사회는 냉혹했다. 조금 잘난 그 정도의 사람은 널렸고, 개천에서 용이 될 것 같은 이들은 금수저의 손발이 되는 게 일반적이며,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심지어 특별하게 여김을 받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이너써클을 만들어서, '너도 끼워줄까?' 하며 비아냥거렸고, 그런 이너써클에 참여하려면 적당히 비위를 맞춰야 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잼병이다. 사나이 쫀심이 말이다, 비굴하게(?) 어떤 이득을 위해서 머리 숙이는 일을 용납하지 못했다. 해서 나는 낭중지추라는 말을 버렸다. 능력도 없고 노력해 봤자 쫌스러운 소유자 밑으로 기어들어가야 한다면 독고다이가 되는 게 낫겠다 싶었다.

3.
이런 나에게 돌아온 말은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였는데, 이 말이 이렇게 비열하게 사용되는 줄 몰랐다. 기존의 상식에서 나는 이 속담을 '타인에게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 말고 넉넉히 받아주는 관용'으로 이해했건만,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자존심 버리고 머리 숙여라. 눈 깔아라. 그래야 뭐라도 얻을 것이니'로 통용됐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바랐던 몇 억 짜리 교회를 받았는가? 에이, 그렇게 해주는 금수저는 "거의" 없다. 순진하기는..쯧쯧. 그들도 적당히 손발이 되었다, 말았다 했을 뿐이다. 나름 어디선가 목사로 살고 있을 터이니, 부디 그런 교회로는 안 가기를 빈다.


4.
[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 이 책을 그 당시에 읽었더라면 조금 달라졌을까? 모르겠다. 사회심리학이라는 분야에서 연구한 관계의 결과들을 종합해, 내용 자체는 그럴듯하다. 존중하여 평한다면 근거가 분명한 내용들이고, 가차없이 평한다면 기본적인 사회 처세술이다. 목사의 입장에서는 "낮아지신 예수"를 따라 살아야 하는지라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해는 가나 동의할 수 없는 것의 대표적인 두 가지는 "겸손"과 "자리"다. 저자는 아마도 겸손을 자기축소, 또는 자기왜소라고 여기는 듯 하다. 세상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보다, 최고처럼 보이는 이들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단골요소인 확증편향이 요기서도 등장하는데, 최고 같은 첫인상에 이후의 행동을 끼워맞춰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매우 논거가 정확한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자리를 먼저 선점하라는 맥락이 나왔다. 상석에 앉지 말라하신 내 주님의 말씀과 정면충돌이다.

5.
다만, 언제나 그렇듯 해석의 주도권을 가져온다면, 실력을 보여야 할 때는 겸손이 마이너스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신앙의 실력(?)이 드러나야 할 때 나는 못하겠다고 몸을 빼면 안 되지 않을까.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책임져야 할 것이 있고, 주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주춤거리기 보다 역할에 맞는 자리에 당당하게 앉는 것이 좋다. 예로, 학폭방지협회 같은 곳에서 올바른 결실을 협의해야 한다면 엉거주춤 엉덩이만 들이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신앙적 가치를 확실하게 발하여야 할 때, 그럴 때는 그에 맞는 자리를 선점하는 것이 더 좋겠다.

6.
인상 깊은 몇 구절이 있는데, 고작 몇 구절을 보자고 거금 15,000원이나 사용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이렇게 도서관에서 대출해 훑어보면 된다. 대출이라니까 금리 인상이 떠올라 괜히 안쓰러워진다. 대출은.. 안 하는 게.. ㅡ,.ㅡ;;

7.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동역자에 관한 생각과 고민들에 대해서다. 회사나 교회나 사람과 일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 교회도 함께 일하는 사람 서로가 좋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책의 내용은 도움이 되겠다. 거동이라고 표현한 성품적인 것을 분별하는 이해와 방법, 드림팀을 꾸려 평생 함께해도 좋다 할 이들의 손을 찾아야 한다면 꽤나 건질 게 많다. 하지만 교회를 경영적인 면에서만 생각한다면 교회답지 못할 것이니 이런 점은 주의해야 하겠다.

8.
낭중지추. 주머니에 송곳을 넣고 다니면 찔리고 아플 뿐이다. 이제는 주69시간을 일해야 한다는데, 이럴 때 일 잘한다고 잘못(?) 찍히면 워라벨은 딴 나라 얘기일 것이다. 9시 이전에 퇴근하는 것이 꿈처럼 여겨지는 비루한 삶이 될 수도 있다. 잊지 말자. 세상은 어제나 그제나 오늘도, 무려 내일도 금수저의 손에 있을 뿐이다. 이 아픈 현실을,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이렇게도 망가지는 나라를 뭐라 해야 할는지 너무 무겁고 먹먹하다만, 어쨌든 나는 목사로써 하나님의 눈에 언제나 발견되는 너와 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9.
하여 우리의 몫은 일관적인 구별됨이다. 스펙과 기술과 자격증을 갖추어도 일관적인 구별됨이 없다면 그게 다 죄의 통로일 뿐이다. 더 잘난 죄인이 된다 한들, 뭐가 다를 것인가. 보여줄 최고의 능력은 일관적인 구별됨이다.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어디서나 주의 사람으로 사는 것 뿐이다. 오늘날 교회의 망조는 일관적인 구별됨이 없어서가 아닌가. 교회 안에서만 착한 이들이 교회 밖에서 더 혐오를 일삼는다는 걸 세상이 이미 다 알아버렸다. /이런 이해를 위해 [공감의 반경]을 강추한다/

교회 밖에서도 교회여야 한다. 보여줄 능력은 이 하나다. 십자가.

10.
세상에서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고지론으로 접근하면 백전백패다. 십자가의 승리방식은 고지에 있지 않다. 그런 식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면 좀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앙의 가면을 쓴 야망인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받아야 할 인정은 이런 것이다.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서, 관계에서 말이다, 언제나 친절하라. 예수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담아내도록 올바르게 성실하라. 혐오에 대해, 옳지 않음에 대해 부드럽게 바로잡으라. 때론 손해를 보더라도 내 이득을 고집하지 말고 내어주라. 무엇보다 흔들리지 말라. 흔들리지 않을 수 없겠지만, 흔들려도 다시 제 자리로 오라. 제 자리에 있는 것이 안식이다. 성도의 제 자리가 어디인가?

십자가다.

---

낭중지추.라는 말도 좋지만 지금은 화엄경의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더 신뢰한다.
목사가 불경 좋다 한다고 뭐라 말자. 얼마든지 십자가로 풀어줄 것이니.
이게 실력이다. 구시렁구시렁

#잭내셔 #어떻게능력을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