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소통>
예를 들어보죠 2000년대부터 기업에서 호칭, 직급 없애고 조직 문 화 수평화를 시도했지만 바뀐 게 거의 없었어요-쇼윈도 조직만 늘 었죠. 위계는 여전하고 후배는 주녹 들어 있었어요. 지난 20년간 경영자 신년사가 초지일관 ‘혁신, 변화, 위기’ 였잖아요. 가끔 소통과 수평이 양념처럼 들어갔죠. 윗사람들 생각은 한결같아요. ‘밑에서부터 바뀌어야지.’ ‘윗사람에게 잘해야 소통이지'
-[일터의 문장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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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형이야. 어디서 형을 찾니. 시멘트벽 사무실에서 그분과 나, 두 사람이 있었지만, 입은 한 사람만 쉴 새 없이 열렸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입은 닫고 귀를 여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미 귀에 말이 차고 넘쳐서 더 열릴 틈도 없었다. 그분은 나에게 시종일관 관계성이 없다고 했다. 시멘트 벽 사무실을 나오면서 나는 관계성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관계와 그분이 말하는 관계가 소리는 같아도 뜻이 다르다 느꼈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하고 있어도 다른 뜻이어서 나는 그분을 형이라 부를 수 없었고, 형이라 부르지 않아야 했다.
2.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이와는 소통이 어렵다. 답정너이거나 내 말대로 하라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고집을 피우는 상대와는 엮인 일 외에는 말할 것이 많지 않다. 내가 을이면 적당히 맞춰 줄뿐이다. 나에게는 형이라는 호칭과 그런 관계가 인간적인 것이었다면, 그분에게는 같은 말이 전혀 다른 의미였다. 조직이었고 이득이었고 종속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분은 공개적으로도 내게 같은 말을 했다. "이목사는 관계성이 없어서 힘들겠습니다.", "이목사는 관계성이 별로입니다." 그렇게 저격하며 자신이 의도한 관계를 요구하는 그분에게 나는 형이라 부를 수 없었다. 공적인 호칭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도 직책과 업무의 선후가 존재하기에 고마운 일이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그분의 이해에 맞게 표현했는데, 손에 받아든 것에 기분 좋은 그분은 그럴 때만 나에게 "내가 형이잖아."라고 했다. 나는 형이라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분은 이미 형이 되어 있었다.
3.
윗사람에게 잘해야 소통이다. 이 문장에서 나는 그분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하,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이거로구나. 적당히 좀 굽혀주고 적과의 동침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걸 몰랐구나. 그런 면에서 나는 관계성이 없어도 하나도 없는 게 맞았다. 쥐뿔도 없는 게 독불장군처럼 틀렸다고 말하며 들이받는 게 "형"을 무시하는, 관계성 빵점인 사람이었구나. 뭔가 흐릿하고 모호했던 것들이 이 한 문장으로 뻥 뚫리는 것 같다.
4.
십년 가까이 지난 서른 중반 때의 나는 그랬는데, 마흔 중반의 나는 어떻게 달라진 것일까? 나아진 것일까? 아니면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근 걱정스러운 일이다. 내가 욕하던 것이 이제는 내가 된 것 같아서.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옛 어른의 말처럼 내가 꼭 그러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민망하고 창피한 느낌이다.
5.
해서 나는 자주 "고맙다"고 말한다. 별 것 아닌 것도 고맙다고 말하고, 상대가 조금 무례했거나 실수했어도 "고맙다"고 표현하려 애쓴다. 왈칵 쏟아내고 싶지만, 그게 꼭 좋은 것은 아닐 거여서 어찌됐든 고마움을 표현해보려 나름 찾고 찾는다. 작은 것이라도 고마운 게 분명 있을 테니까. 분명히 나만 잘하고 잘난 건 아닐 테니까. 분명히 배우고 깨달은 것이 있을 테니까. 고맙습니다.
6.
고마움이 소통이다. 고마움을 표현하면 고마움으로 돌아온다. 계산적인 게 아니다. 내가 이렇게 해주었으니 너는 이정도는 해주는 게 맞다는 따져보자는 게 아니다. 고마움은 좀 이상한 힘이 있어서 고마움을 받은 이의 마음이 고와진다. 그래서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럽게 고마움일 때가 많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보편적과 상식, 합리적으로 말이다.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고마움이 서로에게 오갈 때, 소통이다. 윗사람에게 사과박스를 가져다 주어야 소통이 아니다.
7.
오늘도 어제의 난감함을 함께 겪은 교회 식구들에게 먼저 고마움을 표현했다. 역시나다. 고마움으로 돌아온다. 난감하고 허탈했을 것인데도 돌아온 표현들은 고마움이다. 아, 물론 목사에게 뭐 이래라 저래랴 하지는 않겠지만, 왜 느껴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저게 립서비스인지, 그래도 나름 진심인지 어느 정도 알겠는 그런 거 말이다. 어제 못 오신 핵심멤버 한 분은 미안함까지 더해서 고마워하셨다. 그 상황을 같이 겪었어야 덜 아팠을 텐데, 자신의 빈 자리가 미안하다는 그 말에 나는 밝아진다. 고마운 일이다. 도와주신 분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정말 고마운 손길이며 마음이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고마움은 몰랐을 것 아닌가. 생각이 이렇다보니 마음이 밝아진다. 너의 실수에도 고마움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나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아버지께 곱디 고운 마음을 표현해본다. "고맙습니다."
8.
그러고보니, 어느 익명의 천사가 이름을 지우고 과일박스 하나를 보내주셨는데, 고맙다 답을 못했다. 택배회사는 고객정보이기에 발송자를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누구신지,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사과와 배는 처음이었어요." 나는 홍옥이라 이름붙은 녀석을 처음 먹어봤다. 상큼한 청포도맛이 깃든 사과라니! 이렇게저렇게 채워주시고 챙겨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9.
이런 흐름이 고인 물이 되지 않게끔 고마움을 흐르게 한다. 이게 또 뿌듯한 맛이다. 고마움이 가면 반드시 밝아지고 고와진다. 쉽지 않을 그 삶에 고운 마음을 띄워 보낸다. 밝아질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가 잠시나마 따스함을 느꼈던 그 빛이 마음에 밝혀질 것이다. 잠시이겠지만, 사람은 잠깐의 따스함을 잊지 못한다. 내가 그랬듯 서로가 그럴 것이다.
10.
결혼주례를 부탁받았다. 고맙다. 내가 고마운데 저들이 더 고맙다고 한다. 곱다. 마음이 곱게, 고와진다. 고맙다. 아들이 안아달라고 한다. 고맙다. 딸이 집을 잘 지키고 있으라 한다. 고..맙다. 어머니께서 잘 다녀오라 하신다. 고맙습니다. 누나가 장보기 팁을 알려준다. 고맙다. 차를 잠깐 빌려쓴다. 이렇게 비 오는 날, 참 고마운 일이다. 동행한다. 아내가. 절을 해야 한다.
임마누엘. 가슴 뻐근하게
고맙습니다.
이 고운 마음으로 주님을 닮아가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내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