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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아들이 아니다

우리다시 2023. 7. 20. 06:19

엄마의 육아가 숙련노동이라면, 아빠의 육아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야 실력이 는다. 반복이 곧 답인데, 그러려면 아이와 집에서 부대끼기 위한 시간과 체력을 투입해야 한다.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맡기지 않으면 계속 남편은 육아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 머무르게 된다.

-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홍현진 저.

 

 

1.

반찬이 없다.

된장찌게 밀키트를 하나 뜯어서 얼른 차려내긴 했는데, 반찬은 어딨어? 냉장고엔 김치그릇, 달걀, 각종 된장고추장. 뿐이다. 반찬은? 반찬이 없다. ..

 

2.

아들이 학교에서 코로나 걸린 친구가 마스크 벗고 달려들어 부벼댄 후로 지난 주간 코로나로 앓았다. 아이 방에 이것저것 자주 들락거리던 아내는, 소독약을 뿌리고 다녔는데도 화요일 코로나에 걸렸다. 그리고 나는

주부가 되었다.

 

3.

가족 장례가 있어 가 보니, 상조회사는 늘 그렇듯 장사를 하고 있었고, 작년 겨울에 예수님을 영접하신 이모부님의 장례는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목사라는 직함이 민망해지는 순간은 이런 때다. 너는 목사이니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눈총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따갑다. 이모부님 구원에 평생을 애써오신 엄마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아들을 들이민다. 엄마랑 많이 싸운다. 증말.

 

4.

여자저차. 이래저래. 어쩌구저쩌구 해서 매형 목사님이 입관 예배를, 천국환송예배, 그리고 봉안예배를 내가 하기로 했다. 파주 북단에서 인천의료원까지 매일 왔다갔다 하고 가족 어른들 앞에서 집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족이 제일 어렵다.

 

5.

장례를 다 마치고 돌아온 화요일 오후. 딸 아이의 기침 소리가 이상하다. 얼른 밥 먹이고 재운 후에 오늘 아침 자가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쌔빨간 두 줄. 양성이다. 아이를 엄마 방에 밀어 놓고 첫째를 밥 먹여 학교 보낸 후에 밀린 집안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밑도 끝도 없다.

 

6.

이건 취사병이 아닌가. 그래서 권사님들이 그렇게 삼식이, 삼식이, 미운 삼식이. 제일 예쁜 영식이라고 하셨나 보다. 설거지를 하면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뭐 하지도 못했는데 밥을 먹고 하려 하니 다시 설거지다. 빨래도 해야 하고. 청소는 엄두도 못 낸다. 아내는 수퍼맨이었던 걸까. 엄마는 늘 이렇게 살아왔구나 새심 눈물겹다.

 

7.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집안 일에, 장례에...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은 손도 못 대고 있는데, 이게 엄마의 현실이었구나. 자기가 없어지는 이 무력감. 이걸 공감하지 못한 체 "가사도 예배"라며 떠들어 댔구나. 하여간 뭐든 겪어봐야 공감하는 공감치.로 산다. 눈치는 빠른데 유독 아내에게만큼은 무감각하다. 죄인으로 산다.

 

8.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의 저자 홍현진 씨는 "남편은 아들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아들이 아니니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하라는 뜻일 테다. 독박육아 되지 않도록 너의 아빠 된 역할과 남편 된 역할을 좀 제대로 하라 한다. 물론 숙련공인 엄마보다야 못하겠지만, 최소한 하려고는 해보라는 투다.

 

9.

아빠는 아들이 아니다. 막내아들이다. ,.;;; 시엄마의 막내 아들로 살아온 나는 참 제멋대로인데, 아내는 막내 아들 같은 나를 잘 길러주고 있다. 이상하게도 아내는 엄마를 닮았다. 하지만

아내는 엄마가 아니다.

 

10.

저녁시간이다. 식사는 참 무섭다. 설거지도 무섭다. 무서운 일을 너는 그렇게 당연하게 하고 있었구나. 가끔 도와주는 설거지, 빨래에 고마워하던 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몸으로 겪는 중이다. 해서

피자 시킨다.

아빠가 최고다.

아빠는 막내 아들이다. 잔머리 대왕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