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곳에서 더 잘하라>
편한 곳에서 더 잘하라
속장모임 힉사 후 타 타임
이런저런 교회 얘기 중 누가 잘하더러, 누구네 어머니 오셨던데 정말 닮았더라. 깜놀
거기에 그 어머니가 계셨던 것
편한 자리에서 더 잘해야 한다. 거기가 예의가 무장해제 되고 편하게 풀어져 가감없는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 썩 괜찮은 포장이 벗겨졌는데 초라하고 비루하면 실망하기 마련.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Manners maketh man – KINGS MAN 대사 중
1.
호치민에서의 일이다. 제법 사이가 돈독해진 속장님들과 외국풍 물씬 나는 타오디엔에서 속장모임 후 즐겁게 브런치를 나누고는 티타임을 갖고자 메인스트릿을 관광객처럼 거닐던 적이 있었다. 8명이나 되는 인원을 다 담을 수 있는 테이블을 찾아 그 더운 정오의 햇볕을 마다하지 않고 헤집고 다녔다. 몇몇이 찾아낸 적당한 곳에 들어가 우리는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2.
속장(소그룹리더) 모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의 운영이나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 맴버와 헬퍼가 될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누가 잘하더라, 어떤 분은 이렇게도 하시더라, 그분 어머니가 오셨던데, 정말 닮았더라 등등 그러던 중 내 맞은편에 앉으신 속장님 한 분이 눈이 똥그래져서 깜짝 놀라며 짧은 비명을 외쳤다. “으앗!!”
3.
내 뒤편 한두 테이블 건너에 우리가 말하던 그 집사님의 어머님께서 조용히 앉아 계셨던 것이다. 다들 깜짝 놀라서 뭔가 죄라도 지은 것처럼 우르르 달려가 멋쩍게 인사를 했다. 천만다행으로 칭찬이었기에 망정이지 흉을 봤다거나 부정적인 험담을 했다면 정말 낭패였을 테다. 칭찬이었어도 뒷담화 같아서 너무 죄송하고 낯부끄러웠다.
4.
편한 자리에서 더 잘해야 한다. 공석에서는 웬만해서는 누구나 예의를 잘 지킨다. 하지만 그 예의가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편한 관계, 편한 자리에서는 벗겨진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평소 속장님들께 부탁드리고 권면하기를 “부정적인 얘기, 험담이나 고자질 같은 말들이 나오면 속회는 망합니다. 모임 시작부터 한 번은 언급하시고 모임을 시작하세요. 우리는 공감하고 격려하며 응원하고 기도하는 것만 합니다.” 이랬어도 실수한다. 이랬어도 현장에서는 별별 상황이 다 벌어진다. 평소 진심의 태도로 살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망가지기 십상이다.
5.
조 날리며.로 연일 난리법석이다. 해학의 민족은 태극히 휘바이든, 봄바람 휘바이든 하며 수준 높은 풍자를 하는데, 안타깝게도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다. 저렇게 중요한 자리에 왜 어울리지 않는 일상언어가 나왔을까? 그의 주변에 편한 사람들로 둘러쌌기 때문이다. 이 새끼, 저 새끼 해도 괜찮은 그런 이들로 자기 주변을 채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는 것은 반말이다. 그의 하대는 너무 일상적이었다. 그런 말을 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고,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어서 그는 지도자의 언어가 아니라 자기 일상 언어, 너를 무시하는 하대를 자연스럽게 내뱉을 수 있었을 테다.
6.
하여 평소에 잘해야 한다. 편한 관계에서 더 잘해야 한다. 실수하기 싫다면 아무리 편해도 존대를 해야 한다. 내가 손윗사람이어도 가볍게 하대하지 말고 일단 존재부터 하고 최대한 내 앞의 너를 존중해 주는 것이 안전하다. 예의는 너를 높이려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려 하는 것이다.
7.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그날 이후 나는 집사님의 어머님을 다시 뵌 적은 없다. 그분께서 교회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 중심에 있던 목사를 뭐라 평가하셨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괜스레 죄송하다. 나쁜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셨을 수도 있다. 평생 잊지 못하고 이불킥 해야 할 경험이다.
8.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어설픈 나는 실수가 많아서 늘 조마조마하다. 어른을 뵐 때도, 청년을 만날 때도 나는 조심스럽다. 하루에 열두 번을 마주쳐도 아빠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으셨던 아빠의 가르침을 다시 새겨보는 요즘이다. 이런 나를 목사로 만드신 주님은 얼마나 더 조마조마하실까. 킹스맨. 왕이 만드신 성도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9.
생각해보면, 나빠진 관계는 거의 다 예의와 태도가 문제였다. 일의 성패나 의미 같은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보다, 사소한 태도, 그것을 통해 불쑥 드러난 실체에 실망하고 정죄하며 멀어진 관계가 더 많다. 포장은 썩 괜찮았는데, 포장을 벗기니 초라하고 비루한 실체여서 실망시킨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았을까. 죄송하다.
10.
아이에게도 기꺼이 존대하고 무릎을 구부릴 수 있는 모습이길 바란다. 교회에 그런 모습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우리의 꼴이 손가락질이 되기보다 손뼉을 치는 일이 되면 좋겠다. 잘 살아야겠다. 더 진심으로 인사해야겠다. 네 안에 주님 계실 것이니 말이다. 인사만 잘해도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우리의 예의 안에 주님이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