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다시 2022. 10. 24. 09:31

세속에 대한 흥미가 강렬하면 바쁘기를 구하지 않더라도 바쁨이 절로 이르고, 세속을 향한 흥취가 담담하면 한가하기를 힘쓰지 않아도 한가함이 절로 이른다. 명나라 사람 육소형의 말이다.

- 김기석, <아슬아슬한 희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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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월의 마지막 주일이다. 뻔한 클리셰로 말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어쩜 이리 빠른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의 속도가 빨라진다더니 나는 고작 마흔 셋인데 이리 빠르면 우리 엄마의 시간은 얼마나 더 빠를 것이며, 국방부 시계는 느리게 간다는 군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젊은 것인가.

2.
목사인 나는 시간의 빠름을 설교에서 느끼는데, 벌써 설교해야 할 날이 돌아왔다. 좀 느리게 와도 좋으련만 이리도 빨리 온 것이 나는 좀 야속하다.

3.
하루 일과도 설교로 시작해서 설교로 끝나니, 어쩌면 목사라는 굴레는 늘상 이 글쓰기와의 지루한 씨름일지도 모른다. 말그대로 일주일 내내 설교에 치여 산다.

4.
말씀에 치이는 삶이라 좋겠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 혼자 말씀을 보고 씹고 누리는 것이라면야 그럴 수 있겠지만 이것을 "발표"해야 하고, 이런 발표가 쌓여 어떤 결과로 다가온다고 할 때, 이 치이는 삶은 고달프기도 하다. 새벽기도만 안 해도 살 것 같다는 목사님들의 푸념은 기도를 안 함에 의미가 있지 않고 매일의 글쓰기와 발표라는 무시무시한 숙제 때문이다.

5.
이런 분주함 중에도 꼭꼭 확인하는 것이 내 나라 뉴스이고, 이 나라 소식이고, 지인들의 소식이며, 세상 사는 이야기라서 시간은 더 쪼개진다. 그나마 갖고 있는 것도 이리 쪼개지니 당췌 독서라는 것은 그 새벽이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6.
말꼬리를 찾고자 김기석 목사님의 책을 뒤적거리다, 명나라 사람이라는 육소형의 말꼬리에 걸렸다. 그가 말하는 세속을 향한 흥취가 어쩌면 나에게는 그 잘난 소식들이겠구나 싶다.  이 소식들을 들춰보느라 시작이 늦고, 시작이 늦으니 마무리도 늦는다.

7.
바르트는, "설교자의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지만,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이다. 그러고보니 유튜브 중독증상이 10대보다 60대가 더 높다는 통계도 있다더라. 핸드폰을 적당히 다뤄야 "시간에 좋다".

8.
시간이 좀 더 생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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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가족의 얼굴을 좀 더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놀아달라는 아들, 매달리는 딸, 그 뒤치닥거리를 하는 아내. 가족 곁에서 좀 더 소리를 듣고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혼자 밤을 새다가 잠시 찍어놓은 사진을 보며 혼자 웃는 게 아니라, 같이 웃으면 좋겠다.

10.
막상 이러고는 같이 있을 땐 쉽게 화를 내는 모지리 성격은 언제 고쳐질까. 지하 사무실에서 나는 매일 홀로 고독하다. 책 제목처럼 아슬아슬하면서도 이것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