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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당신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

우리다시 2023. 5. 31. 22:10

극단적(?)  E성향인 나는 전반적으로 I성향에 둘러싸여 살았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며 업무를 제대로 맡기까지는 E의 특성이 뭔지, I의 특성이 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즐겁게 살면 되는 거였으니까. 명랑하고 쾌활하게 지내면 될 뿐이었던 내가 타인의 성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갈등이었다. 나의 말을 뾰족하게 받아들이는 반대성향의 사람들이 외계인처럼 보였는데, 이것이 성격 차이라는 것을 알고는 "성격 이해"가 사회생활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배우고 알고 난 후 주변을 둘러보니 의외로 내 주변에 I성향이 많았다. 이들 속에서 사는 것은 살아남기와 비슷했으니, 이런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미디어숲. [당신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 양쓰위엔 저.

 

종이박스 군처럼 생긴 표지가 인상적이다. 부제가 마음에 든다. "명랑한 척 하느라 힘겨운 내향성 인간을 위한 마음 처방". 나는 저자인 양쓰위엔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소개를 보면 '10만 조회 수의 칼럼니스트 베테랑 심리상담사"라는데, 사실 잘 모르는 이다. 어쨌든 I에 둘러싸인 나 같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겠거니, 하는 희망으로 읽었다. 

 

책의 서문은 호기롭다. 사회생활에서 "자신감"은 필수요소로 여겨져서 전반적으로 자신감 있는 유형을 원한다. 하지만 이것이 조용한 스타일의 I형 인간에게는 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회가 원하기에 무분별하게 E형 스타일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I형 인간들은 서럽다. 그런 이들에게 저자는 "자신을 외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고 사회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쓴다"며, 그럴 필요가 없음을 말해주려 한다. 외향성을 흉내내는 "가짜 외향성"으로 살지 말고 더 건강한 자기 자신이 되라 한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숨기며, 심지어 가면을 쓰면 행복하지 않다. 조용한 편인 I형 인간은 의도하지 않게 이런 가면을 쓰는 경우가 많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성향으로 타인이 평가하는 가면을 쓰는 일이 잦고, 심지어 나는 가만히 있어도 남들이 이렇다, 저렇다 가면을 씌우는 일 또한 매우 빈번하다. 이렇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쓴 I형의 아픈 속내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어 외부 세계와 더 깊이 관계를 맺고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두려워서 감추는 게 아니라 드러낼수록 두려움은 사라지는 거라고 말해준다. 

 

전형적인 I형의 회피 성향이다. 건강하지 않은 I형 인간이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은 불안을 감추는 것이다. 다만 실제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않아 극한 피로감을 느낀다. 그럴 때 I형 인간은 혼자있는 편을 택하는데, 이것이 "무관계"로 잘못 발전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관계는 자유로움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듯, 무관계는 진짜 자신을 보여주지 못해 의지가 고갈되고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지 못해 외로운 상태다. 자신의 상태를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면에서 도움을 준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것이 부정적인 인식으로 자리잡을 위험이 있는데, 내향적인 성격을 약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나를 약점으로 인식하면 나와 반대되는 너를 강점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너와 나의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강약으로 힘의 불균형을 낳는다. 강점을 지닌 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I형 인간에게 이런 일은 어쩌면 평범하게 느껴질만큼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내향형인 I를 잘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내현적 자기애"에 대한 설명인데, 저자는 '수치 자기' 또는 '취약 자기'라고 설명한다. 이는 겉으로는 좋은 사람이지만, 내면은 지독한 이기심을 품은 상태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사람 좋은 척 하면서도 속에는 열불이 난다. 이런 자기 괴리는 건강하지 않다. 조용한 것과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전혀 같지 않다. 내향형이 쉽게 사로잡힐 수 있는 부정적인 상태라 하겠다. 

 

이런 개념정의가 이 책의 장점이다. 여러 사례를 통해 좀 더 받아들이기 쉬운 개념을 반복해서 알려주는데, 이것은 중요하다. 나의 감정과 상태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나는 그 상태/정서에서 객관화가 된다. 이것은 나를 이해하는데 필수다. 이름을 붙여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개념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내 안의 부정성을 가장 가깝게 느끼게 한 부분이다. "욕하면서 닮는다". 공격자와 동일시하는 이 상태는, 나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닮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이 상태를 "미성숙"이라고 설명하는데, 싫어하는 행동을 내가 싫어하면서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하면서 닮아가면 안 된다. 우리는 사랑해서 닮아가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고 관계에 덤덤하면서도 진실해야 한다. 

 

 

갈등에 대한 태도에 관한 말이다. 긍정으로 표현하기. 내형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내향적인 성격도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말하고 표현할 수 있다. 이는 갈등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저자는 갈등도 자기표현의 방식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건강한 선이해가 나의 표현을 진실하게 드러나도록 돕는다. 갈등은 회피할 게 아니라, 마주하는 것이며,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써가 아닌, 갈등에 긍정적인 자기 표현을 하는 것으로써 이뤄진다. 

 

 

I형 인간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 중 하나는, 자신감 있게 나서지 못해 사랑받거나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편견이다. 의외로 I형 인간에게 이런 일이 빈번한 것 같다. E형 인간들은 대체로 무슨 일이든 즉시 풀어버리는 성향이 강해 이런 식의 자기비하는 웬만해서는 안 하는 것 같다.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으나 대체로 그래보인다는 뜻이다. 조용한 I형 인간, 내향성의 사람은 나서지를 않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기 쉽다. 그렇게 자리잡은 열등감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괜한 두려움을 가질 이유도, 지레 겁먹고 먼저 도망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밑줄 빡빡 그어야 하고, 별을 58,000개 그려야 한다. 나는 이 책의 핵심이 바로 이 부분이라 생각한다. I형 인간은 조용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꼭 자기와의 대화를 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이 도망이고 회피인 경우가 더 많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대화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바로 이 부분에서 그 답이 나온다. 풍선 게임. 풍선을 나눠주는데 못 받고 주춤거리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바로 나다. 나는 나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가? 이런 상상과 표현이 나와의 대화다. 정확하게는 대화의 시작이다. 내가 나 바깥에서 나를 설정하고 바깥의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보는 것. 표현해 보는 것.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여기다. 방법을 모르는 이여, 풍선을 주라. 

 

진실만큼 좋은 대화는 없다. 진실만큼 좋은 배려는 없다. 내향적 인간이라고 해서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를 숨기고만 싶은 것도 아닐 것이다. 필요하다면 나를 드러내야 한다. 그럴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 나를 꾸밀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대신 건강하고 밝게, 올바르게 드러내면 된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것이 I만은 아닐 테다. 모든 인간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다. 그러니 내가 평가받듯 나도 평가하는 대등한 관계라는 것을 기억하고, 솔직한 나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도 된다. 진실과 솔직함은 때때로 가장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보통의 힘이라는 개념도 좋다. 물론 개인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보통'은 이미 보통이 아니기에 위험하다. 그러함에도 저자의 의도는, 나만 불행한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하다. 저들에게도 일어설 힘이 있다면 나에게도 일어설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보통의 힘'이라는 개념을 설정했다. I형 인간의 특성상 혼자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 거리며 더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그 상태에 대한 이름붙이기가 필요하고, 필요한 과정에 대한 이름 붙이기가 필요하다. 기억하자. 그게 바로 '보통의 힘'이다. 이미 나에게 그럴 힘이 있다고 저자는 말해준다. 내가 나일때 가장 강하다. 그게 보통같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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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장점은 "이름 붙이기"와 "풍선게임"이라 하겠다. 요즘에는 심리상담서적이 워낙에 많아 여기저기서 다들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웹에는 재미로 할 수 있는 심리테스트가 널렸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은 정보의 정확성이다. 한 사람이라는 우주를 어떻게 E와 I로 딱 갈라서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런 이가 있다면 그는 신이다. 무능력하고 개성없는 신. 이 책도 I형을 위해 썼다고는 하지만 사실 모든 인간에게 조금 다 내재되어 있는 약점들이다. 그래서 "이름 붙이기"와 "풍선게임"은 누구나에게 필요하다. 이를 쉬운 내용으로 설명해주는 저자에게 고맙다. 

 

단점은, I를 위한 책이라 함에도 I를 위한 배려가 적다. 저자가 제시하는 가면을 벗는 방식은 대체로 E의 성향과 유사하다. E의 것을 가면으로 쓰지 말자고 했는데 요구하는 바가 E스러워서 당황스러운 면이 있다. I의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는 사소한 방법들이 제시되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