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화하고 동하지 않는다> 8. 10. 2016
동남아시아의 매우 저렴한 식자재를 바탕으로 살다보면 먹는 것이 매우 풍성해 진다. 물론 현지식으로 먹을 때의 이야기다. 타국에서 고향의 맛을 보려면 고향에서보다 두 배 가까운 지불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의 맛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알기까지에는 많은 비용을 치러야했다. 재료가 다르고 손맛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 나름 합리화를 해 보지만, 생기는 불평은 피할 방법이 없다. 그저 헛웃음, 쓴웃음으로 넘어가곤 한다.
그렇다고 사십 년을 살아온 비루한 몸뚱아리가 현지화 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해서 나는 이곳에서 동남아의 무른 배추를 사고 동남아의 고춧가루를 사서 겉절이를 해 먹는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할 수 있음이 큰 위안이다. 나는 여전히 한국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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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 살면서 타국의 문화와 정서에 익숙해지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일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몸뚱아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거창하게 토착화라고 말들 하지만 탁상에서 학문적으로 하는 똥꼬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인일 뿐이다. 이곳 사람들과 똑같은 눈 두 개, 콧구멍 두 개, 귀 두 개, 팔다리 두 개가 달려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나를 이루는 요소는 내가 살아온 땅과 내가 살아온 이들과 내가 먹은 것들에 달려있기에, 같은 두 개의 눈일지라도 저들과 나는 보는 것이 다르다. 어쩔 수 없는 이 차이를 우월로 따지거나 어느 한쪽을 강요하면 그것은 저렴한 일이다. 군자는 화하고 동하지 않는다고 공자는 말씀하셨다더라. 너를 인정하고 나를 인정하여 서로가 더불어 함께라면 그것이 옳은 것이며 값진 것이며 진정한 토착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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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버릴 때 나는 저렴해 진다. 저렴한 삶은 졸렬하다. 남의 눈치만 보며 따라 가기 급급하다.
나의 근본을 잘 유지할 때 나는 유일한 가치를 지닌다. 이것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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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선생의 글에서
"야생화는 한 포기에 5천 원씩이었고, 수입종이나 개량종은 2천 원씩이었다. 버려진 들판에 피어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야생의 풀꽃들이 훨씬 더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버려진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배가 어느 정도 불러진 연후에야, 그리고 화려하고 요란한 것들을 싫증나도록 누린 연후에야 그 초라한 것들의 아름다움이 비로소 보이게 되는 모양이었다."
화단에 심을 꽃을 사러 화원에 갔더니 야생화가 더 비싸더라는 이야기다. 야생화가 비싼 이유는 그 가치 때문이다. 야생화의 가치는 무엇인가?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은 가치이다. 남들 따라 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나 다움을 잘 유지한 가치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 다울 때
너는 너 다울 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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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피운 꽃을 부러워 하는 이들이 많은 때다. 남의 길을 보면서 내 길의 초라함을 불평하는 입술도 많은 날들이다. 시키는 대로 살았더니 이 모양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불쌍한 말들도 쉼 없이 들린다. 내가 살아버린 날들인데 어쩌란 말인가.
답은 없다. 그저 "오늘"이 또 다시 주어졌을 뿐.
나답게 오늘을 살면 된다. 그게 제일 좋은 것이며 가장 값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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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나와 같아지라고 강요하는 세상이다.
나와 같지 않으면 빨갱이라 부르고, 내 뜻을 따르지 않으면 불온하다, 믿음이 없다 말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과 그런 교회와 그런 구성원들 사이에서 우리는 참 고생이 많다. 처음엔 마음이 고생하는데,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고 나면 그 다음엔 몸이 고생한다. 이것은 애시당초 타협이 아니라 저항, 즉 버텼어야 하는 일이었음에도 타협했기 때문이다. 당장의 저항이 두려워 얄팍한 계산으로 타협을 했더니 웬걸, 외부의 요구는 더욱 거세게 짓누른다. 이게 세상의 법칙이다.
야생화가 더 값지다. 온실에서 잘 자란 대량품종들은 절반의 가격도 되지 못한다. 그저 잘 자란 예쁜 꽃이겠거니와 거기엔 자본의 교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생명일 것인데 흡사 조화와 같은 무미건조함이 풍긴다. 생명의 향기보다 교화의 냄새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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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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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부부도, 자녀도, 양육도, 친구관계도, 신앙관계도 다 여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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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다운 삶은 획일적이지 않은 삶이다.
믿음이라는 명목으로 획일적인 종교인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가?
종교적 언어에 잘 교화된 교회 기능인을 만드는 것이 옳은가?
획일적인 종교인. 교회 기능인을 양성하다보니 세상이 절망해버렸다.
교회 바깥을 떠나서는 어떤 값어치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 바깥에서도 종교적 언어로 생기 없는 삶을 살며 고생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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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같은 꿋꿋한 삶이어야 한다. 누가 뭐라 하든 내게 주신 내 모습을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이 삶의 신비이고 생명의 나아갈 길이다. 내가 가장 나다워질 때, 나를 만드신 이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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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사람이다. 김치를 먹어야 하는 한국 사람이다. 통배추가 없어도 겉절이를 만들어야 하는 한국 사람이다. 내가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나에게 특별함을 갖는다.
나는 신앙인이다. 목사이기 이전에 나는 성도였고 성도이고 성도일 것이다. 말씀을 먹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하는 나는 신앙인이다. 세상과 똑같이 살아서도 안 되고 교회 기능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 나는 나를 만드신 이의 뜻으로 되어가야 할 존재다.
너는? 너는 누구냐?
남의 삶을 따라가는, 흉내 내기에 바쁜 너는 누구냐?
부디 너만의 삶을 살라. 다들 하는 공무원 하려 하지 말고 너만의 꽃을 피우라. 그게 가장 값지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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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김훈 #저전거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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