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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세속에 대한 흥미가 강렬하면 바쁘기를 구하지 않더라도 바쁨이 절로 이르고, 세속을 향한 흥취가 담담하면 한가하기를 힘쓰지 않아도 한가함이 절로 이른다. 명나라 사람 육소형의 말이다. - 김기석, 중. --- --- 1. 10월의 마지막 주일이다. 뻔한 클리셰로 말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어쩜 이리 빠른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의 속도가 빨라진다더니 나는 고작 마흔 셋인데 이리 빠르면 우리 엄마의 시간은 얼마나 더 빠를 것이며, 국방부 시계는 느리게 간다는 군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젊은 것인가. 2. 목사인 나는 시간의 빠름을 설교에서 느끼는데, 벌써 설교해야 할 날이 돌아왔다. 좀 느리게 와도 좋으련만 이리도 빨리 온 것이 나는 좀 야속하다. 3. 하루 일과도 설교로 시작해서 설교로 끝나니, 어쩌면 목사.. 더보기
진격의 거인 교회 다니는 사람이 가장 교인답게 보일 곳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 바깥, 울타리 너머다. 교회 안에서의 태도와 말투, 노래가 교회 바깥에서도 같아야 한다. 울타리 안에서 온갖 포장을 한들, 바깥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여러 집회를 하고 콘서트같은 찬양팀을 세워 우리끼리 즐거워 해도 바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모두 허상일 뿐이다. 핍박 받은 성도들은 도망가야 했다. 즐거운 걸음이 아니었으며 좋은 일은 더욱이 아니었다. 아픈 일이었고 절박한 싱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는 곳마다 같았다.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바깥에서나 똑같이, 그들은 예수를 말했다. 예수를 전했고 기도했으며, 십자가를 고백했다. 도망간 것인가, 전도여행을 간 것인가? 거인. 다르지 않은 그 항상성이 처음 교회 성도들의 권세였다.. 더보기
<Manners maketh man>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Manners maketh man – KINGS MAN 대사 중 1. 호치민에서의 일이다. 제법 사이가 돈독해진 속장님들과 외국풍 물씬 나는 타오디엔에서 속장모임 후 즐겁게 브런치를 나누고는 티타임을 갖고자 메인스트릿을 관광객처럼 거닐던 적이 있었다. 8명이나 되는 인원을 다 담을 수 있는 테이블을 찾아 그 더운 정오의 햇볕을 마다하지 않고 헤집고 다녔다. 몇몇이 찾아낸 적당한 곳에 들어가 우리는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2. 속장(소그룹리더) 모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의 운영이나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 맴버와 헬퍼가 될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누가 잘하더라, 어떤 분은 이렇게도 하시더라, 그분 어머니가 오셨던데, 정말 닮았더라 등등 그러던 중 내 맞은편에 앉으신.. 더보기
like Dutch Bros 신앙은 더치브로스처럼. 고객의 아픔에 함께 손을 잡아 기도해주는 더치브로스 직원들의 모습은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기도의 용기를 더치브로스에게서 발견한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주어도 괜찮냐는 질문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표현해왔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땅에 처음 등장했을 때가 그랬다. 처음 교회 사람들은 기도가 당연했고 너를 위한 기도에 용기가 있었다. 생의 위기를 겪고 있었지만 그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불안한 의심이 흘러오면 그들은 행동했다. 사랑을 표현하고 기도를 표현했다. 그게 당연했으며, 그렇게 그들은 의심을 넘어섰다. 기도하는 스스로가 답이었다. 행동하고 표현하는 서로가 확증이며 이미 이루신 십자가 사랑을 서로에게서 확인했다. 하늘나라가 거기 임.. 더보기
<군자는 화하고 동하지 않는다> 8. 10. 2016 동남아시아의 매우 저렴한 식자재를 바탕으로 살다보면 먹는 것이 매우 풍성해 진다. 물론 현지식으로 먹을 때의 이야기다. 타국에서 고향의 맛을 보려면 고향에서보다 두 배 가까운 지불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의 맛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알기까지에는 많은 비용을 치러야했다. 재료가 다르고 손맛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 나름 합리화를 해 보지만, 생기는 불평은 피할 방법이 없다. 그저 헛웃음, 쓴웃음으로 넘어가곤 한다. 그렇다고 사십 년을 살아온 비루한 몸뚱아리가 현지화 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해서 나는 이곳에서 동남아의 무른 배추를 사고 동남아의 고춧가루를 사서 겉절이를 해 먹는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할 수 있음이 큰 위안이다. 나는 여전히 한국사람이다.. 더보기
<10년 차 초보> 단순히 오래 일한다고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실력이 만들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하다 보면 늘겠지'라는 생각은 마치 시간만 지나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을 보자. 10년 차, 20년 차 초보자는 얼마든지 있다.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진선 --- --- 1. 스승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신학생 때 목사님들에게 교회가 휘둘리고 갈등이 생기고 무너지는 것을 여러 번 보면서 '참된 목자, 참 스승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시도때도 없이 했더랬다. 보고 따라갈 발자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누굴 만나든 이 분께 배울 것은 무엇인가를 본능적으로 가늠해 보는데, 그만큼 나는 어설프다. 여전히. 2. 친구들 중에도 선배 .. 더보기
<낮게 나는 새> 높게 사는 새가 멀리 본다더라. 그런데 낮게 나는 새는 자세히 보는 법이다. --- --- 1. 높아지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다. 언젠가 담당 선교구가 바뀌었을 때였다. 4선교구에서 3선교구로, 지역은 서울 동쪽에서 더 동쪽, 그리고 완전 북쪽으로 범위가 4~5배는 커졌다. 개발에 땀나게 뛰어다녀야 한다. 범위가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격려하고자 "목사님 을 축하드립니다. 4에서 3이 되셨으니 한 단계 더 올라가시는 겁니다." 라고 어느 어른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표현이다. 어린 목사가 얼마나 고생일까,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주신 말씀이다. 실제로 내 믿음은 그렇게 더 "올라간" 것 같다. 이때의 올라감이란 단단해짐, 그리고 건강해짐이라 하겠다. 2. 올라가는 세상에 대한 신앙의 저항은 내려가.. 더보기
<능력 없는 목사> 가장 선한 것은 우리 자신 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육체적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선물은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시고 정확한 타이밍에 우리를 안전하게 집으로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다. - [일상의 영적전쟁] 중, 데이비드 폴리슨 --- 1.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시는 분은 위독한 상황의 권사님이셨다. 주변에 계신 가족들은 모두 침울하고 어두운데 어린 목사를 마주하시는 병상의 권사님은 유독 환하게 빛나고 계셨다. 2. 목사로서 싫은 일 중에 하나는 병원심방이다. 나는 그 아픔의 현실이 못내 서럽다. 연약한 우리 몸이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정말 싫지만- 병원을 간다. 그리고 거기에 주신 인생이 거하기에 목사는 당연하게 그 인생을 찾아 뵙는다. 하지만 그 아픔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