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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감각

끈질긴 감각

교육의 장애 요인 중 첫째는 학계 간 교류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는 교사들의 동기를 북돋울 만한 끈질긴 감각의 부재다. 현 대 사범학교에서는 방법론은 개인과 문화의 특성에 달려 있기 때문에 (따로) 가르칠 수 없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셋째는 교육이 가니 영향이 사회경제적 힘에 비해 미미하다는 인식이다. (가설을 세우고, 탐구하고, 증명하는) 과학 정신의 부재 또한 교육계를 망치고 있다.
-[난독의 시대]. 박세당. 박세호

난독의 시대. 박세당. 박세호 저.




1.
언제부터인가 문자 메시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읽긴 읽었는데 기억으로 남지 않고 금새 휘발되었고, 심지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는 일도 잦았다. 이게 단지 이해가 안 된다기 보다는 아예 입력이 안 된다는 느낌이다.

2.
국내 최초 난독 전문가 1호라고 당당히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이런 현상이 아이폰이 도입된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거인의 노트를 쓴 김익환 저자도 대한민국 기록학자 1호라 했는데, 이분도 1호다. 나도 뭔가 1호 하고 싶..) 아이폰을 선두로 SNS가 보편화 되었고 작은 화면에 깨알같이 박힌 글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다. 초기 트윗은 80자 내외의 간결한 텍스트를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는데, 장문의 피로감과 난독 증상을 이해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안타깝게도 스마트폰은 문자보다 동영상과 이미지를 더 쉽게 접하도록 하면서 난독은 시대적 현상이 되고 말았다.

3.
개인적으로 난독이 안타까운 이유는 교인들이 말씀 묵상을 너무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 작은 화면에 붙들린 포노 사피엔스*는 행간을 이해하고 문맥을 놓치지 않는 내밀한 독서를 감당하기 어렵다. (*포노 사피엔스. 최재봉 저. 스마트폰 신인류)

4.
이북도 그렇다. 베트남에서는 한국 책을 구하기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다양한 이북을 이용했다. 근 8년을 사용한 게 아까워 지금도 매달 지갑을 털어가는데도 해지하지 못하는 이북 플랫폼은, 읽어도 뭐가 남지 않는다. 책의 전체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단편적 문장만 겨우 건진다. 이는 책장에서 책을 보고 꺼내며 전체를 담아내는 독서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력도 0과 1의 단순 작업이 되어가는 거 같다. 느낌적으로, 이 느낌은 대단히 불쾌하다. 독서에 피로감까지 생긴다.

5.
목사의 현실이 이랬으니 교인들은 더 했을 것이다. 만화책도 웹툰으로 대체된 마당에 독서를 하는 이들은 오히려 신인류가 되었다. 호모 부커스는 희귀종이다. 그러니 성경을 대하는 게 어디 말이나 되겠는가. 큐티 좀 하자고 그렇게 외쳐도 떠먹여주는 설교에 잠깐 좋다 마는 현실이다.

6.
이런 현실에 대해서 저자는, 물론 교육계를 콕 짚기는 하지만, “끈질긴 감각”이라는 표현을 했다. 아. 이게 좋다. 끈질긴 감각. “교사들의 동기를 북돋울 만한 끈질긴 감각의 부재다.” 라는 이 문장에서 나는 오랫동안 붙들려 있다. 끈질긴 감각. 이게 필요하다.

7.
바울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다. 이게 바로 끈질긴 감각이다. 바울은 포기할 수 없다. 끈질기다. 그의 열정은 이 끈질김, 끈적한 지속성이다. 그는 알았다. 죄인 중의 괴수와 같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은 십자가의 끈질긴 사랑 덕분이었다는 것을. 탕자가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끈질기게 문밖으로 나가 기다리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이 전제에 붙들린 자는 마찬가지로 끈질겨진다. 끈적거리며 밀고 간다.

8.
말씀을 끈질기게 밀고 가는 사람들이 그립다. 현실에서 이게 잘 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감각으로 밀고가는 목회자가 그립다. ‘그건 기본이지’라고 쉽게 대답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회 문밖으로만 나가도 사람이 달라지는데, 목회자의 마음과 손길이 거기까지 가닿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나 떠벌리지, 제발 가정에서 말씀이 되고 자녀와 말씀을 나눠보라고, 매일 새벽이나 아침마다 깊이 있는 읽기를 해보자고 손을 내미는 이는 적다. 그런 끈질긴 감각이 없다.

그저 깔끔하고 싶을 뿐.

9.
끈질긴 감각. 주일 아침에 하나님은 분주한 나를 끈질기게 추격하사, 이 단어를 붙여놓으신다. 끈질긴 분이 끈적거리는 걸 붙이셔서, 이 말이 오래 갈 듯 하다. 좋다. 내가 사는 방식이니.

10.
한둘 밖에 없다고 좌절할 텐가. 잘 안 된다고 손 놓을 쏘냐. 끈질긴 감각으로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때가 오고 있다. 그러니 더 끈질겨야 한다. 이미 때가 왔다. 나라는 인생이 끈질긴 사랑의 증명이다. 이 두 가지를 되새긴다면 나도 끈질긴 삶이 될 테다. 공동체도 끝내 끈질겨지리라.

#우리다시교회 #난독의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