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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 닮는다>

당신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 양쓰위엔. 미디어숲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은 ‘공격자와 동일시 identification with the aggressor"라고 한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나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는 등 자기도 모르게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대상의 특징을 따라 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미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 [당신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 중, 양쓰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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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형처럼 하지 않을 테니 나에게 그런 걸 요구하지 마세요. 고3 때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았으면서 일찍 소천하신 아빠가 싫었다. 항상 엄격했고 무서웠던 아빠는 같이 있으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형은 언제나 집의 기준이었다. 형은 안 그러는데 너는 왜 그러니? 이 말을 어깨에 지고 살았다. 그런 형이 긴 사춘기를 보내면서 배신감을 주었을 때, 여전히 그런 형을 기준으로 요구하는 엄마에게 반항하며 했던 말이다.

2.
욕하면서 닮는다. 옛 어른의 지혜는 정말이지 참이다. 많이 다르게 산다 하면서도 불쑥불쑥 아빠의 정떨어지는 엄함이 나에게 나타났다. 형의 조절되지 않는 사춘기의 분노의 행동이 나의 분노로 튀어나왔다. 참 무서운 일이다. 핏줄이라는 것은. 아니, 상처라는 것일까.

3.
더 안타까운 것은 공동체를 대할 때도 이러고 있다는 점이다. 설교를 들은 이들은 “목사님께 혼났다”고 웃으며 말했다. 언중유골이다. 위로받지 않은 나는 위로할 줄 몰랐고, 따끔한 잔소리를 딴에는 설교라고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필요한 말도 지혜롭게, 그리고 따뜻하게 하는 성숙이 내게는 없었다.

4.
양쓰위엔의 [당신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에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두려워하는 대상을 싫어하면서도 닮는 것은 그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이라 여기는 미성숙이라고 한다. 미성숙. 이것이 현상에 대한 정직한 진단이다.

5.
미성숙이라는 말을 쉽게 풀어보면 건강하게 독립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속에는 아동기의 심리에서 성인으로 자라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우리 속에 아이가 있다. 이 아이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나 자신 뿐이다.

6.
해결은 간단하다. 내 속의 아이에게 지금의 내가 친절하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공감하는 것이다. 나의 상처에, 나의 두려움에. ’너 많이 아팠구나. 네가 나였구나.‘

7.
이런 식으로 내가 나를 자주 바라볼수록 나는 성숙해져 간다. 욕하면서 닮던 모습에서 조금씩 분리되어 간다. 욕하지도 않게 되고 닮지도 않게 된다. 서서히.

8.
우리 신앙은 조금 더 원론적이다. 지금의 내가 내 속의 어린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주님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거신다. ’너 많이 아프구나. 너의 아픔이 내 아픔이구나.‘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시는 주님을 만나면 우리도 말하게 된다. 주님처럼 다정하게. 욕하면서 닮아가는 게 아니라 사랑하면서 닮아간다. 사랑은 닮는 것이다.

9.
삶을 조금이라도 희망할 수 있는 이유는 날마다 다가오시는 주님의 사랑 때문이다. 아침마다 새롭고 날마다 새롭다고 했던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은혜 안에서 사는 날마다의 희망을 말한다. 그렇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의식하고 의지하며 우리는 희망을 살아낸다. 세상의 허망한 욕구와 허상에 속지 않고 오롯이 나로 살아간다. 내 안의 아이가 희망으로 자라가면서 성숙해진다. 성숙해져가는 하루를 사는 인생은 아름답다. 성숙은 아름다움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10.
말을 걸어보자. 다정하게. 내 안에 숨어있는 나에게.
주님이 나에게 그러신 것처럼. 그런 주님을 내가 기대하는 것처럼.

#우리다시교회
#당신은어떤가면을쓰고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