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조심하라고, 네가 나를 필요하다 느끼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게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 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은 끝났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지. 그래서 내 어머니는 두 사람 몫을 하느라 죽지도 못했어. 너의 할머니처럼,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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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브레히트의 시에 대한 신형철 작가의 글이다. 오늘은 내내 여기 머물러 있다. 독서를 더 진행했으나 이내 다시 돌아와 여기 머문다. 이 한 장을 넘어가기가 아깝고 안타까워 나는 여기 머문다. 그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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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글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갈망과는 다르게 현실은 치열했다. 아이들은 치과에 가서 치열(?)을 보냈고, 그 아이들을 학교에서부터 "끌고" 오가는 아내는 치열했으며 전투적이었으며 날이 서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중간에서 나는 이 글을 들고는 오갈 데가 없다.
작가의 말처럼 조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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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 심방을 다녀왔다. 왕복 120km가 넘었다. 그래도 몸이 견뎌주었다. 날개 달린 듯 차를 타고 오갈 수 있어서 감사했던 날이다. 송도는 내가 사는 월롱면 영태리와는 비열하게 대조적이다. 최첨단 도심은 놀이터도 실내에 있고 미니 동물원도 실내에 있다. 유리창으로 나를 보는 알파카를 마주하고서 나는 주절거렸다. 딴 세상이네.
신기해 하는 내가 쿠션블럭 위를 또각또각 오가는 알파카보다 촌스러웠다. 알파카는 도시에 익숙했고 나는 도시에 낯설었다. 송도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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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님 한 분께 전화를 걸어 어제의 가벼운 농담을 사죄했다. 문득 오늘 생각해보니 어제의 그 농담은 하지 않는 게 나았다. 마음이 좀 가벼우시라고 던진 말에 그는 기분이 상하기도 할 터였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 민망하지만 회개했고 그는 넉넉히 받아주었다.
이게 교회로구나. 하는 안도가 있었다.
나 같은 죄인을 목사로 받아주는 성도님께 목사다움으로 보답해야 할 텐데, 나는 참 모자라다.
작가의 말처럼 조심스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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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조심스러우셨다.
하늘 군대를 불러 멸하실 수 있었지만, 조심스러우셨다.
샬롬. 다시 인사를 하실 때도 조심스러우셨다.
누군가의 개그처럼
돌무덤 안에서 일어나셨을 때도 조심스러우셨으리라.
그러니 잠든 이들이 돌문이 굴러간지도 몰랐을 테지.
화려하지 않고 조심스러우셨다.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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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