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이름만으로도 가슴 웅장해지는 말이다. 삼국지. 우리나라 남성 중에 삼국지를 안 읽어 본 사람은 있어도 삼국지를 못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 한나라가 무너지면서 중원을 재패하고자 했던 파란만장한 시절의 이야기는 역사라고도 하고,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재미있다. 이런 삼국지에 심리학을 덮어씌운 이가 있으니...
심리학으로 《삼국지》 인물을 재해석한 최초의 시도
충의를 지켜 천하제일 영웅이 되다!
중국의 천재 작가로 불리는 천위안의 심리학 시리즈 중 관우 편이다. 조조와 제갈량을 이어 관우 편에서는 의와 신뢰는 다루는데, 삼국지의 세 남자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바탕으로 하여, 관우가 어떻게 신의를 지켜가고 영웅이 되는지를 심리학의 시선으로 해석한 흥미로운 책이다.
소패성 전투에서 패배한 유비는 홀로 도망가 버리고, 의형제 관우가 유비의 아내 둘과 함께 하비성으로 후퇴하는데, 이런 관우를 조조가 섭외하고 구애하는 일련의 흐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굳이 삼국지를 읽지 않았어도 저자가 이런저런 앞뒤 맥락을 이야기 해 주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다.
관우는 충의를 지키고 다시 유비와 만나 도원결의를 지킬 수 있을까?
관우가 조조에게 투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에 대한 날카로운 심리적 분석과 다시 유비를 만나기까지 스스로를 지켜낸 관우의 마음과 태도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게끔 이끌어 간다. 이런 과정에서 독자는 스스로의 마음과 태도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특히나 돈이면 가족에게도 등 돌리는 오늘날의 얄팍한 이기심에 대해서 관우의 충정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다림줄이 되기도 한다.
내용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하면서 "한나라에 투항한다"고 했던 명분과 심리를, 2부는 조조의 보호 아래 살면서 관우 스스로를 지켜냈던 삶의 태도와 그런 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물심양면 베풀고 계산하는 조조의 심리와 그 주변인물들의 상황을 풀어낸다. 3부는 꼬일대로 꼬인 관계 속에서도 드디어 유비에게로 돌아가는 관우의 상황을 심리적으로 해석하고 조언하고 있으며, 4부는 돌아가는 상황에서 겪는 관우의 아픔과 고뇌를 담아내고 있다.
배신은 정당한가?
신용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형제가 내일의 적장이 되기도 했던 분열의 시대. 위.촉.오의 패권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붙고 떨어지던 이들의 내적 상태는 괜찮은 걸까? 의리에 목숨 건 관우의 태도는 지혜롭다고 해야 하는가? 여러 가치관과 생각이 인물마다 드러나고 부딪힌다.
몇 가지 인물의 특징이 이렇게 나타난다.
조조, 문 간에 발 들여놓기
맹장 관우의 명성은 익히 아는 바, 관우를 잡으면 여러 면에서 이득이 되는 조조의 마음은 "문 간에 발 들여놓기"로 대변된다. 그는 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많은 수를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다. 이것이 조조다. 관우가 적이 된다면 이보다 골치 아픈 일도 없다. 조조는 조심스럽게 작은 것부터 하나씩 관우라는 단단한 문을 연다. 발부터 집어넣고 끝내 마음을 활짝 열고자 한다. 하지만 조조는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유비, 제가 넘어가는 비극은 흔하다
도망가 원소에게 붙었던 유비의 선택. 당시 조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원소 뿐이었기에, 유비는 배알이 꼬여도 그의 손 아래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하지만 멍청한 원소와는 달리 그 휘하의 부하들은 제법 눈치가 빠르다. 유비라는 세 치 혀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는다. 그러나 그게 자기 무덤 파는 일이 될 줄이야! 유비의 상황판단과 타인의 심리를 이용하는 모습이 놀랍다. 임기응변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법이다. 내가 먹지 못한다면 남도 먹지 못하게끔 짓밟아야 한다. 유비의 삶이다.
관우, 타인의 시선에 붙잡히다
관우는 충직이 생명인 사람이다. 그는 타인의 시선에 사사로운 이기심으로 비춰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모든 상황에서 관우의 기준이 여기에 있다. 신의. 이 하나가 관우의 삶이며 관우가 가장 신경쓰는 기준이다. 타인에게 신의가 없이 보인다면 기꺼이 자기의 손이라도 잘라내야 하는 인물이 바로 관우다.
하지만 대쪽같으면 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옆으로 새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우의 귀환은 험난하다. 이미 조조에게 받은 것이 많고, 이제는 조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돌아가지 못한다면 죽음 뿐이다. 죽어서라도 신의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게 관우의 심리다. 고생하나 신의를 지킨 그를 후대는 신처럼 떠받들고 있다. 그의 신의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삼국지의 상황을 심리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독특한 시도다. 이런 저자에게 사람들은 "심리설사"라는 새로운 칭호까지 만들었다. 역사를 심리로 풀어낸다는 것은 역사라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만들었던 인물들을 통해 많은 깨우침을 줄 수 있다. 아마도 천위안의 심리학 시리즈는 이런 면에서 탁월함을 인정받는 듯 하다.
물론 삼국지나 무협, 중국에 관심이 덜한 여성에게는 책을 펼치게 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애시당초 그런 기대 자체가 없을 수도 있겠다. 삼국지는 가히 남성의 이야기 아닌가. 어쨌든 관우는 공자와 더불어 중국에서 신으로까지 추앙되는 전설적인 존재다. 삼국지에 홀릭하는 남성들만 해도 이미 전 세계적으로 차고 넘친다. 남자들만 읽어도 이미 충분하다. 그런 면에서 여성의 심리는 대단히 축소되어 있고, 본래 삼국지의 등장인물에서 여성의 비중이 상당히 빈약하기에, 그 자체로 천위안의 책은 약점이 있다. 여성의 이야기와 여성의 심리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반영된다면 더 좋을 듯 하다.